Burning ★★★★

This review may contain spoilers. I can handle the truth.

This review may contain spoilers.

이창동 감독의 신작은 젊은 세대 너머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 종수를 쫓아가며 마주하는 세상은 지금 이곳의 풍경이다. 보이지않지만 끊임없이 들리는 대북확성기의 소리처럼 휴전체재에서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이고, 도대체 무슨일을 하길래 같은 또래인데 돈이 저렇게 많은지 알수 없는 이들을 마주한다. 카드빚에 내몰리고, 도저히 이해가 힘든 부모님들의 굴레에서 벗어날순 없고 잠시 찾아간 알바에서도 군대식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풍경 속에서 종수에게 있어 혜미는 남산 타워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이며 동시에 종수는 혜미에게 남산처럼 큰 남근이자 늘 구원해줄 존재이자 빛이고 싶다. 하지만 한순간 들어왔다 사라지는 빛처럼 종수에게 행복은 벤이 등장함으로써 사라지게 된다. 서민적인 음식점에서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은 그냥 노는 것이라 말하고 포르쉐에 혜미를 태워 사라지는 벤의 존재는 종수에게 있어 이해할 수 없고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존재이며 유사 어머니이자 사랑이라 믿는 혜미를 빼앗아가는 존재이다.

혜미는 원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어하지만 종수는 해줄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자신의 세상에 다시 갑자기 나타난 어릴적 동네친구이자 집나간 어머니이며 연인이라 믿는 혜미를 놓고 싶지 않을뿐이다. 혜미에 대한 종수의 믿음이 강해질수록 혜미의 모든 말은 진실이 된다. 아마도 존재하지 않았을 우물에서 혜미를 구해준 것은 자신이라 확신하게 된다. 혜미가 노을속으로 사라진뒤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않자 종수는 벤의 비닐하우스 이야기를 떠올리며 매일아침 마을 곳곳에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향해 달린다. 지금 세상에서 종수가 자신의 세상을 지킬수 있는 것은 달리는 것외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달릴수록 목적과 방향은 잃게되고 자기 확신에 빠지게 된다. 비닐 하우스에 불을 붙이고, 항상 말없이 걸려오던 전화에서 집나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며 우물이 있었다고 대답하는 엄마와 만나고 벤이 키우던 고양이를 혜미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으로 부르자 종수에게 다가온다. 이때쯤 종수는 혜미가 어떤일을 겪었고, 혜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서 들리던 알수 없는 소리가 무엇때문인지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종수는 지금까지 쓸수없었던 소설을 쓸수 있게 된다.

버닝에서 벤이 연쇄살인범인지 혹은 윤락업을 하는 포주인지 아니면 그냥 부자집 청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종수가 세상을 마주하면서 겪는 혼란.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혼재된 이 곳에서의 균형감각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지금 우리가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